'컴프롬어웨이', 불시착한 낯선 땅에서 피어난 '연대의 힘' [리뷰]

입력 2024-02-12 09:00  


영공을 폐쇄한다는 미국 연방 항공청(FAA)의 결정에 따라 유럽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비행기들이 캐나다로 우회했다. 캐나다 뉴펄랜드의 작은 도시 갠더에는 총 38대의 비행기가 불시착했다.

밀폐된 기내에서 오랜 시간 갇혀 있었던 승객들의 불안감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인종, 국적, 나이, 언어, 미국으로 향하는 목적과 지닌 사연이 모두 다른 이들이 동시에 낯선 땅에 발을 내디뎠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된 2001년 9월 11일의 일이었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는 9.11 테러 당시 캐나다 갠더에서 일어난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작품이다. 캐나다 출신의 아이린 산코프(Irene Sankoff)와 데이비드 헤인(David Hein)이 대본을 쓰고 작사·작곡한 작품으로 이들은 9.11 테러 10주년이었던 2011년 실제로 갠더에 방문해 현지인과 당시 갠더에 불시착했던 승객들을 인터뷰하며 작품을 준비했다.

2012년 45분짜리 워크숍 버전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고, 2015년 샌디에이고에서 공식적인 첫 공연을 선보였다. 이후 시애틀, 워싱턴 D.C., 토론토 등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했으며 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토니상, 올리비에상 등 세계 유수의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음악상·대본상·연출상 등을 수상한 '컴프롬어웨이'는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아르헨티나에 이어 한국 관객들과도 만나고 있다.

한국의 '컴프롬어웨이'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재연하지 않고 우리 창작진들이 새로 디자인하고 재창작한 논레플리카 프로덕션이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도시에 도착한 방문자들과 하루아침에 마을 인구수와 맞먹는 이방인들을 마주하게 된 주민들의 이야기가 초반부에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시작부터 무대는 바쁘게 돌아간다. 공포·혼돈·답답함으로 가득 찬 비행기 내부와 갠더의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생기는 과정이 중첩돼 전개되는데 배우들이 방문자와 마을 주민을 오가며 1인 2역 이상을 소화하기 때문이다.

상반되는 집단의 인물을 동일한 배우들이 표현해내는 데에는 한 치의 어긋남도 허락되지 않았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딱 들어맞는 전개와 어색함이 없는 장면 간 연결에 몰입감은 금세 높아진다. 무엇보다 부지런히 의상을 교체하며 섬세한 연기 변주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역할이 크다. 완벽한 이들의 호흡은 연습량이 상당했음을 가늠케 했다.



낯섦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어는 걱정과 두려움일 테다. 테러 발생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아들을 걱정하는 이, 책임감과 중압감에 시달리는 여성 기장, 소방관인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함에 떠는 엄마, 중동에서 와 사람들의 경계를 받는 남성까지 방문자들의 기저에 깔린 감정은 어둡다.

이를 치유하는 건 갠더 주민들의 포용과 이해의 힘이었다. 사연을 듣고, 공감하고, 위로하며 심리적 거리감은 한층 가까워졌다. 무슬림을 위해 기도 장소를 제공했고, 언어 장벽이 있는 아프리카인과는 성경 구절로 소통을 시도했다.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엄마와 함께 손을 모아 기도했고, 자기 집과 방을 기꺼이 내어주기도 했다.

'컴프롬어웨이'에서 말하는 사랑의 범주는 단순한 '인류애'에 그치지 않는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수화물 칸에서 굶어 죽을 뻔한 19마리의 동물을 구조하려는 동물보호 운동가, 걱정을 안고 성 정체성을 밝혔으나 오히려 환대받는 동성 커플, 이혼 후 새 사랑을 찾아가는 이, 꿈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세상의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까지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여러 유형의 사랑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컴프롬어웨이'다. 낯선 곳에서 발견한 사랑의 기적, 강력한 연대의 힘은 이후 방문자들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컴프롬어웨이'의 백미는 음악이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합창이 있는 첫 넘버 '웰컴 투 더 록(Welcome To the Rock)'부터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아이리쉬 휘슬에 피들, 만돌린, 아이리쉬 부주키에 바우런까지 켈틱 음악을 구성하는 악기의 소리가 흥미롭다. 아이리쉬 풍의 사운드가 작품 속 갠더의 따뜻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마을 파티 장면에서는 반딧불이를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조명까지 더해져 마치 포근한 그 시절 갠더에 가 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공연은 오는 18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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